
경남 밀양시와 울산시 등에 높이 1000m 이상 되는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재약산 등 7개의 산군(山群)을 아우르는 영남알프스는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무들 기묘한 바위들이 서로 어우러져 어디를 가나 절경을 이룬다. 비교적 날카로운 능선과 뾰족한 꼭대기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한국의 산들과는 달리 산줄기 곳곳에 넓은 평원을 갖고 있어 알프스의 고원지대를 닮아 있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영남알프스의 봄엔 파릇파릇한 억새의 새순이 돋는다. 보드라운 연둣빛으로 물든 산등성이를 오를 때면 융단을 밟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 겨울엔 새하얀 눈꽃으로 눈까지 시리다. 그래도 울산 영남알프스를 온전히 느끼려면 가을에 찾아야 한다. 가을이면 곳곳의 황금 억새평원에 나부끼는 순백의 억새 물결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출렁이는 억새 물결을 따라 높고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억새들 사이로 이어진 오솔길을 걸으면 마치 작은 돛단배를 타고 물결 일렁이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 같다.
울산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은 억새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간월재 재악산 고헌산 등에 억새가 군락을 이룬다.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의 평원에 약 60여만 평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간월재에 약 10만여 평에 고헌산 정상 부근에도 약 20여만 평의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특히 재약산과 천황산 동쪽의 사자평은 약 1백25만여 평이나 된다고 한다. 하늘억새길의 가파른 산길과 완만한 능선이 조화를 이루는 등산로는 가뿐한 가을 산책길 정도. 바람과 억새가 만들어내는 풍경에 넋을 잃고 느린 걸음으로 다녀올 수 있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고개인 간월재 부근이 영남알프스의 상징이라고 하여 방향을 잡았다.
추천코스(초행길 또는 단체)
등산을 자주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배내재에서 시작하기보다 사슴목장에서 시작하면 좋다. 울산역에서 328번 버스타고 버스정류장(배내골사슴목장) 하차 - 간월재 - 신불산 자연휴양림(상단지구) - 파래소폭포(울산12경) - 신불산 자연휴양림(하단지구) - 백련암 - 버스정류장(배내골 베네치아산장) 소요시간 45시간

간월산은 ‘달을 보는 산’이란 뜻의 간월산(看月山)이라고 대동여지도에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또 사찰 이름인 간월사(澗月寺)라는 뜻으로 표기되어 있는 등 그 이름과 의미는 다양하다. 산 정상에서 간월산장까지 뻗어 있는 간월공룡능선은 등산객들에게 특히 인기다. 간월산 정상 겹겹이 이어진 산의 능선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마 밤이었으면 휘영청 떠오른 달에 흠뻑 취할지도 모를 듯. 큰 바위를 넘으면 바로 간월재가 내려다보인다.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여 만에 간월재에 닿았다. 간월재엔 1~5구간 중 유일하게 매점과 화장실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매점에선 라면이나 음료 과자 등 간식거리만 취급하니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형제봉인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갈마처럼 잘록한 간월재는 영락없는 여필종부의 부푼 왕가슴이다. 어루만지고 싶은 이 왕고개의 잿길과 잿마루(峴)를 일러 선인들은 왕방재(王峰峴) 또는 왕뱅이 억새만디라 불렀다. 과거 간월재 일대는 맹수들의 정글이었다. 신불산에는 호랑이 간월산에는 늑대 배내봉에는 표범이 우글거렸는데 사람들은 지축을 흔드는 괴성을 들으며 간월재를 올랐던 것이다. 간월재를 오르는 사람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맹수 때문에 일곱 사람 이상이 모여야 출발할 수 있었다. 간월재 잿마루에 올라서면 하늘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간월재 억새밭 속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겨우 발걸음을 뗐다. 신불산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엔 중간 중간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쉬엄쉬엄 가면 된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움푹 내려앉은 간월재와 간월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도 그림이다. 40분쯤 가파른 계단을 올랐을까 신불산 정상에 닿았다. 신불산의 사면은 양쪽이 절벽처럼 가파르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는 게 신기하다.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 정상까지 약 3㎞ 이어진 목재데크 탐방로는 멀리서 볼 때 억새바다 속 미풍에 출렁이는 은빛 물결 위를 건너는 낮은 구름다리 같다. 황금빛 들판에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억새꽃은 개체로서는 소박하면서도 집단적으로는 장엄하다. 성인 키보다 더 높게 자란 개체는 거의 없다. 억새는 주로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는 다년생 벼과 식물로 키가 1∼2m다. 바닷가나 강어귀에서 자라는 갈대는 키가 1∼3m로 1∼2m인 억새보다 더 커서 쉽게 구분된다. 신불산 정상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신불재에 닿는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해 발길을 재촉한다. 신불산자연휴양림 상단 계곡을 건너면 파래소폭포를 잇는 아름다운 오솔길이 열린다. 한 사람이 걷기에도 좁은 소로이지만 아슬아슬한 계곡을 끼고 도는 오솔길은 수백 년을 이어온 철(鐵)의 길이다. 오솔길에 들어서기 전 노을과 함께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억새를 바라본다.